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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포트

0 5 │ 인문, 그 확장의 문을 열다

최근 융·복합이다 뭐다해서 서로 다른 분야끼리 혹은 학문들이 결합하여 제 3의 분야를 만들어내고, 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물론 다양한 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다. 인문분야도 이런 대류에 동참해 예술, 과학, 심리학, 의학, 심지어 음식 등과 결합해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으며, 그에 대한 결과물을 다양한 방법으로 공급·공유하고 있다. 문화리포트 5호에서는 융·복합이라는 대류 속에 주목받고 있는 융·복합의 대표사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내 인문치료사업단이 운영하는 ‘인문치료’라는 것인데,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 짐작한다. ‘인문치료’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실제 학계나 관련 현장에서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활발히 활동·운영되고 있다. 이론과 실용을 접목한 실천인문학의 중심에 있는 강원대 인문치료사업단의 김익진 교수를 만나 ‘인문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가 말하는 실천인문학, ‘인문치료’는 어떤 것인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인문을 활용한 치료=인문치료(humanities therapy)

 

먼저 인문치료사업단이 내린 인문치료의 정의를 살펴보자. “육체적 혹은 정신 적 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거나 그런 고통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인문학적 가치를 활용하여 자아 통찰과 인식론적 변화를 유도함으로 써 정서적·정신적 건강을 확보하는 통합적 병인 극복 과정을 말한다.” 인문(人文)을 활용해 정신적 문제와 마음의 병을 치료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인문치료는 누구에게 어떤 목적과 방법으로 활용될까?


 


인문치료(인문학)- 문학치료(일기/쓰기), 언어치료(조울/의사소통), 철학치료(논리/수양), 예술치료(표현/정서자각)- 치료사연구: 건강/질병 역사기법, 심리치료: 심리기법
인문기법 재해석 효과검증
<기존의학과의 관계> 출처: 강원대 인문치료사업단 홈페이지


 


 

치료대상

 

대상자는 약물치료 및 수술을 요하는 질병을 제외한 정서적·정신적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다. 대상자 대부분이 소외계층, 자활센터, 새터민(북한이탈주민) 등 사회복지시설에 의지하는 사람들이거나, 군대 내 관심병사, 교도소·소년원 수감자, 청소년 보호관찰소 등 격리기관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굉장히 많은 프로그램들을 폭넓은 대상자에게 공급하고 있습니다. 장기적 치료 대상으로 비행청소년을, 규칙적으로 하는 대상은 강원지역에 있는 자활센터의 참여자들입니다. 이들의 피폐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있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새터민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가진 심적 피폐에 대한 치유는 물론, 남한에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정신적 도움을 주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 소년원 등 사회격리 기관에도 재사회화의 목적으로 인문치료를 진행하고 있고, 군대 내 관심병사, 재활병원, 정신병원에도 꾸준히 나가 증상에 맞는 인문치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치료대상자 군을 살펴보니 심리학 치료 혹은 정신과 치료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이 부분은 잠시 후에 언급하기로 하고, 필자가 현재 궁금한 것은 ‘대상자의 선정과 모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이다.

 

대부분의 대상자는 저희 연구소와 업무협약을 맺은 기관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해당 기관에서 저희에게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많은 치유방법을 동원해도 차도가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략-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인문치료를 진행하고 있어요. 정신과 마음의 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예방차원으로의 교육도 함께 실시하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지역의 많은 기관·시설들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었다. 치료대상자를 일일이 찾아 홍보하고 치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연계 기관과의 접촉을 통해 대상자를 늘려가는 방법을 취했다. 또한 노출 가능성이 다분한 불특정 다수에게 실시하는 예방 교육은 잠재적 치료대상자를 사전에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매우 고무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치료방법

 

그렇다면 인문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인문치료는 사유(思惟)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여 그 능력을 표출하게 만드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한다. 이것이 훈련되어야 단계적인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표출 능력이 기반이 되면 읽기·쓰기·말하기와 음악·영화·연극·미술 등 표현 예술적 기법들이 더해지고, 이것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치료의 모듈이 완성된다. 인문치료는 큰 개념에서 문학, 언어, 철학, 예술분야 등으로 나뉘고, 각 분야마다 세부적인 치료 방법을 갖는다. 물론 대상자의 특성을 상세히 파악한 전수조사가 기반이 되며, 이를 기초로 맞춤형 방법론을 도출한다. 모든 프로그램 운영은 이론의 전달과 함께 실습(실천)이 병행되어 진행된다. 또한 진행 과정과 대상자의 태도변화양상은 체계적인 아카이빙을 거치며, 이 자료들은 향후 더욱 발전된 치료방법을 만들어내는데 활용되어진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가 의문이 생긴다. 치료가 완료된 대상자들의 사후관리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치료할 당시에는 효과가 유지되겠지만 치료가 끝난 후에도 스스로의 지속적인 유지가 가능할까?

 

보통 단기 치료는 없습니다. 꾸준한 치료가 이루어지고, 치료가 끝나면 사회에서 충분히 본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가 됩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치료 후 효과의 지속성을 위해 그들을 새로운 치료대상자의 멘토가 되게끔 하고 있습니다. 같은 상황을 겪었고, 그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개입은 여러 가지를 의미하게 되죠.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점조직화가 되면 그 파장으로 인한 효과는 실로 엄청날 것입니다. -중략- 또한 인문치료학이 대학원에 신생학과로 개설됩니다. 학교에서 꾸준히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 보낸다면 폭넓고 전문적인 관리 또한 가능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치료도 중요하지만 치료를 받은 대상자의 사후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치료의 목적은 대상자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리치료와의 차이점?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 심리치료와 인문치료는 치료방법이나 대상 부분에서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김익진 교수는 두 치료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과학의 개입을 이야기 했다. 심리치료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증상을 진단하고 연구하며 치료하지만, 인문치료는 과학적 접근이 아닌 인문학적 입장에서 치료가 진행되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개념과 접근에서부터 심리치료와 차이점을 보인다고 했다.

심리학은 20세기 가장 주목받는 학문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인문치료가 심리치료의 아류가 되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 인문치료는 마음의 병에 대한 정의부터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입장에서 현대인들이 갖는 일상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인문치료입니다.

 

김익진 교수의 말처럼 인문치료는 치료의 대상인 인간에 대한 개념부터 심리치료와 차이를 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방법론이나 지향점 등에서도 심리치료와 공유하는 부분보다 차별화된 부분이 더 많은 듯 보인다.


 


 

인문치료 사례

 

진행했던 인문치료 중 하나의 사례를 간략히 살펴보자. 청소년 교정시설인 춘천 생활관 청소년들에게 실시한 인문치료로써 ‘내 마음과의 소통’이라는 접근법을 활용하였다. 자신을 알고 자아를 발견하면서 남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진행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명: 10년 뒤 미래의 시점에서 자서전 쓰기
대상: 춘천 생활관에 입소한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평균연령 19세)
목적    - 인문치료를 통해 청소년의 비행 예방
           -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주변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그들과 성공적인 소통을 이끌어 내는 것
           - 생활관 퇴소 후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올바로 수행 방법
           - 프로그램은 매주 1회 한 시간씩 총 40회기로 구성되었으며, 각 회기는 60분간 진행
           - 예비프로그램의 진행을 통해 수요자를 분석하고 본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설정
           - 프로그램은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고, 분노 조절을 위한 영화시청, 그림과 글씨를 통해 음식 묘사하기,
             그룹별 토론을 진행하고 미래 10년간의 계획서를 월별로 작성(서술형)하게 하여 미래자서전을 만들게 함.
             과거를 회상하며 지나온 삶, 행복했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 가족과 친구에 대한 묘사를 그림과 글로 적게 하고,
             자서전 내용발표와 실천 약속, 미래자서전에 대한 자기 평가 등을 꾸준한 피드백과 함께 진행함

 

10년 뒤 미래의 시점에서 자서전 쓰기
10년 뒤 미래의 시점에서 자서전 쓰기

 

성과    - 예비프로그램의 운영으로 프로그램의 참여도가 매우 높았음
           - 자신의 위치를 객관화하고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받아들이는 능력 배양, 향상
           - 자신의 생각과 느낌, 타인의 생각을 언어화해봄으로써 공감능력 향상
           - 제어능력과 자기 효능감도 증진, 이는 곧 내면의 소통이나 타자와의 소통 가능성을 열어줌


 

언급한 사례는 강원대에서 출판한 『인문치료 사례연구(2007)』의 일부만을 발췌한 것이다. 이 연구서에는 치료의 필요성, 방법론, 과정, 결과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인문치료는 일반 상담과는 달리 연구자(치료사)가 직접 치료현장에 뛰어들어 대상자와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지속적인 참여관찰을 통해 단계적으로 치료를 진행한다.

 

1) 본 프로그램에 앞서 선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전체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수요자의 전수조사, 글쓰기 훈련, 적극적인 참여를 위한 분위기 환기, 호기심 자극 등 프로그램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인문치료사가 생각하는 인문정신이란?

 

김익진 교수 인문영역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익진 교수가 생각하는 인문정신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학교에서의 인문학은 남들이 생각해 놓은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선대 천재들의 눈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죠. 그러다보면 보통사람들이 보기 힘든 것들을 볼 수 있습니 다. 이런 배움으로 자기 생각의 지평을 넓혀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지요. 그러면 학교 밖의 인문학은 어떨까요. 베이비붐 세대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하다 보니 자기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어요. 세상을 어느 정도 살고나니 자신의 삶이나 사물에 대한 관조(觀照)의 필요성과 재미를 김익진 교수 느끼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관조가 노력한다고 바로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관조도 연습이 되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죠.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인문학, 흔히 대중인문학이라고도 하는데 저는 적정인문학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제야 비로소 이 적정인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생각하는 능력, 관조하는 능력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지요.

 

2) 흔히 공감대 형성이라고 한다. 상담, 교육, 조사를 전제로 대상자와 신뢰, 친근감, 공감대 등을 형성하는 인간관계를 말한다.

 

인문정신은 생각하는 힘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것’,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까’ 등을 생각하는 힘이 인문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 때문에 지구상에서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 70억이나 되는 객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요. 이 많은 객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 고민에 대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양보, 배려, 약속 이런 것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최근 급속도로 산업이 발전하고 있지만 그 부작용으로 인해 ‘기억하는 힘’,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 ‘나눔, 배려...’ 등과 같은 인문적 사고가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능력 중 하나를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고, 그로인해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갖춰야할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고 자신이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키우는 것이 생각하는 힘입니다. 그 힘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이 인문이고 인문정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익진 교수가 말하는 인문정신의 핵심은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이다.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다소 어렵게 들릴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고민, 걱정, 배려, 양보 등을 실천하면서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되돌아보지 않을 뿐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수많은 현상과 사건, 사람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성찰해보는 것이야말로 인문정신을 실천하는 첫 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강원대 인문치료사업단강원대 인문치료사업단은 사회갈등의 해소 방안으로 생활밀착형 인문치료프로그램들을 끊임 없이 연구·개발하고 있다. 그 성과로 월례 학술대회, 연구발표회, 국내외 세미나와 학술대회 등을 개최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공유하고 있다. 또한 예술치료가 발달한 유럽 대학의 예술치료사들을 대상으로 인문치료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예술을 병합한 치료 매뉴얼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들의 활발한 활동은 그간 인문이 통용되던 영역의 한계를 넘어 인문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재조명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나아가 그 가치의 쓰임을 확장하고 인문의 잠재적 기능과 역할은 물론,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문화리포트>는 우리 주변이 문화사례를 소개하는 메뉴입니다.
이 글은 문화융성위원회 연구원이 작성한 것으로 문화융성위원회의 공식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치료사업단 홈페이지 참고
http://www.knuinmun.or.krhttp://www.humantherap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