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나르미
2016 년 11 월
오페라 감상 가이드 [3] - 작곡가와 작품들 (모차르트와 베르디)
오페라 감상 가이드 3번째이자 마지막 시간으로 작품에 관해 얘기해 보려는데요. 수많은 작곡가와 작품 중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공연되는 작곡가와 작품인 모차르트와 베르디에 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인 작곡가들에 대한 이야기 전에 오페라의 역사를 조금만 언급하고 시작할까요?
오페라의 탄생은 르네상스와 함께 1600년경에 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작품이 ‘다프네(1597)’라고 알려져 있고, 음악까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에우리디체(1600)’라고 하죠.
낯익은 제목들이 아니죠?
실제로 초기의 오페라 작품들은 전 세계적으로 많이 공연되고 있지 않습니다. 기록의 문제도 있지만, 초창기 오페라 작품들의 약점 때문이라고 하죠. 드라마와 음악이 결합해 새로운 매체로 탄생한 오페라는, 처음 모습은 연극성이 부족한 약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작품이 노래의 기술적인 면에 치우쳐져 있어 가수들이 기교를 펼치는 볼거리로 가득 찬 일종의 성악쇼 였던 셈이죠. 영화 ‘파리넬리’에 등장하는 ‘카스트라토’ 가수들이 활약하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 파리넬리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시간이 흘러 오페라에 대한 작곡가들의 노력과 개혁이 거듭되어 오페라라는 장르는 점점 그 모양을 갖춰갑니다. 음악과 연극적인 요소가 적절히 균형을 이룬 종합예술로 완성된 것이죠.
그리고 18세기 후반,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손쉽게 접할 수 있을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1.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천재 모차르트의 오페라 작품들이 세상에 공개됩니다.
모차르트는 무려 11살에 첫 오페라를 작곡하는데, 처음 작곡한 오페라부터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드라마가 중요한 요소인 오페라이기에 경험과 대본에 대한 이해가 성숙한 시기에 그 능력이 충분히 발휘된 것이겠죠.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 많이 언급되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폰테 3부작이라고 하는 ‘피가로의 결혼(1784)’, ‘돈 조반니(1787)’, ‘코시 판 투테(1790)’, 독일어로 만들어진 징슈필 ‘마술피리(1791)’. 이 중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소개합니다.
□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대본가 다폰테와 같이한 작품 중 첫번째로 당시에도 화제였던 보마셰르의 희곡 ‘피가로의 결혼’을 오페라로 만든 것입니다. 귀족사회를 풍자한 것이 문제가 되어 출판금지, 공연금지 등으로 논란이던 작품을 각색해 만든 것이죠. 천재는 기획력조차 천재인가 봅니다.
▲ 피가로의 결혼 ⓒ 대구오페라하우스
피가로의 결혼은 3부작 시리즈 중에서 두 번째 작품이라 ‘피가로의 결혼’ 이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1부는 ‘세비야의 이발사 (1816)’로 로시니가 오페라고 만들기도 했죠. (요즘 영화로 얘기하면 프리퀄을 보는 재미가 있는 오페라라고 하겠습니다.)
- 줄거리
4막으로 이뤄진 피가로의 결혼을 보기 위해선 전편인 <세비야의 이발사> 내용을 알아 둘 필요가 있겠죠. 1편에서 피가로는 알마비바 백작과 로시나를 도와 결혼까지 가게 하였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은 이후의 이야기에요. 무려 11명의 캐릭터가 나오는 소동극이라 인물 관계가 복잡하지만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백작 부인의 하녀 수잔나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피가로. 그런데 알마비바 백작은 로시나와의 결혼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수잔나를 노리고 있습니다. 한편 중년의 가정부 마르첼리나와 의사 바르톨로 또한 피가로의 결혼을 방해하려고 하지요. 바르톨로는 전편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피가로에게 망신을 당해 앙심을 품고 있고, 마르첼리나는 과거에 피가로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갚지 못하면 자신과 결혼한다는 약속을 받아 놨습니다.
피가로와 수잔나는 고독한 백작부인과 함께 알마비바 백작을 골탕 먹일 음모를 꾸밉니다.
백작부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익명의 편지를 보내 백작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그들. 백작은 이 작전에 넘어갑니다.
마르첼리노의 결혼 요구는 계속해서 들어오는 가운데, 피가로는 과연 백작에게 골탕을 먹이고 결혼에 골인할 수 있을까요? 백작 부인 로시나는 백작의 사랑을 다시 얻어낼 수 있을까요?
- 대표곡
유튜브나 음반을 통해 들을 수 있는 피가로의 결혼 대표곡들을 소개합니다.
Overture (서곡)
- 연주회에서도 곧잘 연주되는 레퍼토리. 들어보시면 아~ 하는 친숙한 음악.
Non piu andrai (나비는 이제 날지 못하리)
- 1막의 끝에 나오는 피가로가 부르는 아리아. 백작에게서 군대에 가란 명령을 받은 케루비노에게 불러주는 노래죠. 바람둥이 케루비노를 나비에 빗대며 조롱하는데, 은근슬쩍 귀족계급에 대한 풍자를 엿볼 수 있는 노래입니다.
Che Soave Zeffiretto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
- 쇼생크 탈출에 삽입되어 더 유명해진 노래입니다. 모건 프리먼이 ‘가사 내용은 알 수 없지만...’이라고 하는 바람에 그 내용이 더욱 궁금해지는 노래죠. 수잔나와 백작 부인이 편지를 쓰며 함께 부르는 중창인 이 곡은 백작 부인이 얘기하고 수잔나가 연애편지를 대필하는 내용입니다. 한 구절씩 두 여인이 번갈아가면서 부르는 하모니가 너무나 아름답죠. 모건 프리먼의 말 대로 내용을 몰라도 아름다운 곡입니다.
2. 주세페 베르디 (Giuseppe Verdi, 1813~1901)
모차르트에서 바그너로 이어지는 독일 계통의 오페라가 발전하는 동안, 오페라가 탄생한 이탈리아는 어떻게 발전하고 있었을까요?
성악 중심의 오페라 전통이 이어지고 있던 이탈리아는 이를 꾸준히 계승해 벨칸토(bel canto – 뜻 : 아름다운 목소리) 오페라 시대로 이어집니다. 가수들의 기교가 중요한 작품들이었죠. 이때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이 로시니(1792~1868), 도니체티(1797~1848), 벨리니(1801~1835) 입니다. 그리고 이 선배들의 뒤를 이어 등장한 작곡가가 바로 베르디입니다.
베르디는 대기만성형 작곡가입니다. 여관집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니 그렇게 풍족한 집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죠. 게다가 당시 이탈리아는 프랑스 나폴레옹의 지배와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침공을 받는 등 대내외적으로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아내와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잃는 질곡 있는 삶을 겪어야 했던 베르디. 하지만 베르디는 포기하지 않고 창작을 했고 점점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작품성을 더해 가며 오페라 역사에 이름을 남깁니다.
▲ 주세페 베르디 ⓒ 위키미디어
1842년에 발표한 ‘나부코’란 작품이 성공하게 되면서 베르디는 유명해지게 되는데요.
당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 지배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활발했고, 그의 오페라는 애국심을 자극했던 것이죠. 그 뒤로 몇 편의 작품들이 연속으로 역사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들로 큰 흥행을 거두고 베르디는 자리를 잡습니다.
▲ Giuseppe_Verdi,_Rigoletto,_Vocal_score_illustration_by_Roberto_Focosi ⓒ 위키미디어
그리고 이어서 중기 걸작이라고 말하는 ‘리골레토’(1850), ‘일트로바토레’(1853), ‘라 트라비아타’(1853) 등을 발표합니다. 이 시기를 중기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 세계가 역사적인 상황을 드러내는 작품관에서 개인의 감정을 다루는 이야기로 변화했기 때문이죠.
재밌는 지점은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또 다른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가 그와 같은 해에 태어난 라이벌 관계였다는 것이죠. 둘은 심지어 만난 적도 없다지만 베르디는 은근히 바그너에 대해 경쟁 심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그의 말년에는 놀랍게도 바그너의 관현악법을 수용하여 후기의 걸작들을 만들어 냅니다. ‘아이다’(1871), ‘사자를 위한 미사곡’(1874), ‘오델로’ (1887) 등이 손꼽힙니다.
87세의 나이로 장수를 누린 베르디는 국민 작곡가로서 수많은 사람의 추모 속에 장례식이 치러졌다고 합니다. 베르디가 남긴 유명한 명언이 있죠.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 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썼지만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분명 한 번 더 도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자신의 창작열을 불태운 베르디의 삶은 그가 만든 음악만큼이나 빛나 보입니다.
그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었다는 ‘라 트라비아타’를 소개합니다.
□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어르신들에겐 ‘춘희’라는 이름으로도 기억되고 있는 라 트라비아타. 이탈리아어로 길을 잘못 든 여자란 뜻인데요.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직업이 ‘코르티잔’으로 상류사회 남성들을 상대하는 여성들을 의미합니다.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연된 오페라이면서, 현재까지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으로 친숙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사생아였던 뒤마 2세의 원작 ‘춘희’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오페라는, 뒤마 2세가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자신의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되었고, 이를 희곡으로 만들어 공연하게 됩니다. 베르디는 이 연극을 보고 오페라를 만들게 될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해요. 당시 베르디 또한 자신의 작품 ‘나부코’에 출연했던 소프라노와 동거하는 상태여서 작품의 캐릭터에 강하게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라 트라비아타의 초연은 실패했다고 합니다. 시한부 삶을 연기하는 여배우의 나이와 외모가 그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청순가련한 시한부 여인의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진 이미지였다고 해요.
영화 ‘귀여운 여인’의 한 장면, 기억하시나요. 줄리아 로버츠와 리차드 기어가 함께 보러 가는 오페라가 바로 라 트라비아타 입니다. 영화의 인물들과 오페라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흡사하죠. 오페라의 내용을 안다면 줄리아 로버츠의 눈물이 가진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줄거리
알프레도는 파티에서 코르티잔 비올레타를 만나 한눈에 반합니다. 그리고 상사병을 앓던 알프레도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죠. 비올레타 또한 알프레도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녀는 폐결핵으로 인한 시한부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 두 사람은 파리의 교외에 살림을 차리고 도피하는데,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찾아와 알프레도의 여동생이 결혼을 앞둔 상황에 창녀와 동거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 안 된다며 그녀에게 이별을 요구합니다. 알프레도를 위해 비올레타는 그를 떠납니다.
하지만 알프레도는 이 사실을 모르고 비올레타가 배신했다고 오해하고, 그녀를 경멸합니다. 점점 죽음이 다가오는 비올레타. 과연 그녀가 죽기 전에 알프레도는 오해를 벗고 둘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대표곡
Brindisi (축배의 노래)
- 라 트라비아타는 몰라도 이 노래는 어디선가 들어보셨을 겁니다. 파바로티 하면 떠오르는 노래기도 하죠. 1막 초반에 알프레도와 비올레타가 파티에서 처음 만났을 때 부르는 노래. 즐기자! 란 말로 대표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파티에 정말 어울리는 노래죠.
Ah, fors'e lui (아! 그이인가)
- 알프레도에게 사랑을 느낀 비올레타의 설렘과 그 반면에 느끼는 괴로움을 표현하는 노래입니다. 소프라노의 기교와 감정을 최대치로 감상할 수 있는데요. 노래를 들으며 닭살이 돋는 경험을 하실 수 있죠. 이렇듯 벨칸토 오페라의 계보와 연결되는 베르디의 곡 중에서 특히 라 트라비아타는 여주인공 소프라노 역량을 한껏 감상하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
Addio del passato (지난날이여 안녕)
- 작품의 후반부. 죽음이 임박한 비올레타는 알프레도가 진실을 알게 됐다는 것을 듣습니다. 그러나 거울을 본 그녀는 자신의 삶이 끝나가는 것을 느끼죠. 그때 부르는 가장 슬프고도 유명한 아리아입니다.
▲ Carl_d'Unker_(attr)_La_Traviata_Eklat_am_Spieltisch ⓒ 위키미디어
오페라의 수많은 작곡가와 작품들을 다 소개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여기서 소개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몇백년에 걸쳐 축적된 오페라 문화는 현재에 와서 새롭게 재해석 되어 공연되고 있죠. 과거의 전통적인 모습에서 탈피해 현대무용과 무대미술을 만나 전혀 다른 작품으로 느껴지게 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작품들에 익숙해져 가면 이제 연출자와 가수의 해석을 비교해 보는 재미로 오페라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조수미 씨의 말처럼 오페라가 처음엔 익숙하지 않겠지만, 한곡 한곡, 한작품 한작품 보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감동을 받게 되고 미지의 문이 열리면서, 이제까지 보던 것과는 다른 빛깔의 세상을 만나보세요!
본격적인 작곡가들에 대한 이야기 전에 오페라의 역사를 조금만 언급하고 시작할까요?
오페라의 탄생은 르네상스와 함께 1600년경에 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작품이 ‘다프네(1597)’라고 알려져 있고, 음악까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에우리디체(1600)’라고 하죠.
낯익은 제목들이 아니죠?
실제로 초기의 오페라 작품들은 전 세계적으로 많이 공연되고 있지 않습니다. 기록의 문제도 있지만, 초창기 오페라 작품들의 약점 때문이라고 하죠. 드라마와 음악이 결합해 새로운 매체로 탄생한 오페라는, 처음 모습은 연극성이 부족한 약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작품이 노래의 기술적인 면에 치우쳐져 있어 가수들이 기교를 펼치는 볼거리로 가득 찬 일종의 성악쇼 였던 셈이죠. 영화 ‘파리넬리’에 등장하는 ‘카스트라토’ 가수들이 활약하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 파리넬리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시간이 흘러 오페라에 대한 작곡가들의 노력과 개혁이 거듭되어 오페라라는 장르는 점점 그 모양을 갖춰갑니다. 음악과 연극적인 요소가 적절히 균형을 이룬 종합예술로 완성된 것이죠.
그리고 18세기 후반,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손쉽게 접할 수 있을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1.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천재 모차르트의 오페라 작품들이 세상에 공개됩니다.
모차르트는 무려 11살에 첫 오페라를 작곡하는데, 처음 작곡한 오페라부터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드라마가 중요한 요소인 오페라이기에 경험과 대본에 대한 이해가 성숙한 시기에 그 능력이 충분히 발휘된 것이겠죠.
▲ 모차르트 ⓒ 위키미디어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 많이 언급되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폰테 3부작이라고 하는 ‘피가로의 결혼(1784)’, ‘돈 조반니(1787)’, ‘코시 판 투테(1790)’, 독일어로 만들어진 징슈필 ‘마술피리(1791)’. 이 중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소개합니다.
□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대본가 다폰테와 같이한 작품 중 첫번째로 당시에도 화제였던 보마셰르의 희곡 ‘피가로의 결혼’을 오페라로 만든 것입니다. 귀족사회를 풍자한 것이 문제가 되어 출판금지, 공연금지 등으로 논란이던 작품을 각색해 만든 것이죠. 천재는 기획력조차 천재인가 봅니다.
▲ 피가로의 결혼 ⓒ 대구오페라하우스
피가로의 결혼은 3부작 시리즈 중에서 두 번째 작품이라 ‘피가로의 결혼’ 이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1부는 ‘세비야의 이발사 (1816)’로 로시니가 오페라고 만들기도 했죠. (요즘 영화로 얘기하면 프리퀄을 보는 재미가 있는 오페라라고 하겠습니다.)
- 줄거리
4막으로 이뤄진 피가로의 결혼을 보기 위해선 전편인 <세비야의 이발사> 내용을 알아 둘 필요가 있겠죠. 1편에서 피가로는 알마비바 백작과 로시나를 도와 결혼까지 가게 하였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은 이후의 이야기에요. 무려 11명의 캐릭터가 나오는 소동극이라 인물 관계가 복잡하지만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백작 부인의 하녀 수잔나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피가로. 그런데 알마비바 백작은 로시나와의 결혼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수잔나를 노리고 있습니다. 한편 중년의 가정부 마르첼리나와 의사 바르톨로 또한 피가로의 결혼을 방해하려고 하지요. 바르톨로는 전편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피가로에게 망신을 당해 앙심을 품고 있고, 마르첼리나는 과거에 피가로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갚지 못하면 자신과 결혼한다는 약속을 받아 놨습니다.
피가로와 수잔나는 고독한 백작부인과 함께 알마비바 백작을 골탕 먹일 음모를 꾸밉니다.
백작부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익명의 편지를 보내 백작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그들. 백작은 이 작전에 넘어갑니다.
마르첼리노의 결혼 요구는 계속해서 들어오는 가운데, 피가로는 과연 백작에게 골탕을 먹이고 결혼에 골인할 수 있을까요? 백작 부인 로시나는 백작의 사랑을 다시 얻어낼 수 있을까요?
- 대표곡
유튜브나 음반을 통해 들을 수 있는 피가로의 결혼 대표곡들을 소개합니다.
Overture (서곡)
- 연주회에서도 곧잘 연주되는 레퍼토리. 들어보시면 아~ 하는 친숙한 음악.
Non piu andrai (나비는 이제 날지 못하리)
- 1막의 끝에 나오는 피가로가 부르는 아리아. 백작에게서 군대에 가란 명령을 받은 케루비노에게 불러주는 노래죠. 바람둥이 케루비노를 나비에 빗대며 조롱하는데, 은근슬쩍 귀족계급에 대한 풍자를 엿볼 수 있는 노래입니다.
Che Soave Zeffiretto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
- 쇼생크 탈출에 삽입되어 더 유명해진 노래입니다. 모건 프리먼이 ‘가사 내용은 알 수 없지만...’이라고 하는 바람에 그 내용이 더욱 궁금해지는 노래죠. 수잔나와 백작 부인이 편지를 쓰며 함께 부르는 중창인 이 곡은 백작 부인이 얘기하고 수잔나가 연애편지를 대필하는 내용입니다. 한 구절씩 두 여인이 번갈아가면서 부르는 하모니가 너무나 아름답죠. 모건 프리먼의 말 대로 내용을 몰라도 아름다운 곡입니다.
2. 주세페 베르디 (Giuseppe Verdi, 1813~1901)
모차르트에서 바그너로 이어지는 독일 계통의 오페라가 발전하는 동안, 오페라가 탄생한 이탈리아는 어떻게 발전하고 있었을까요?
성악 중심의 오페라 전통이 이어지고 있던 이탈리아는 이를 꾸준히 계승해 벨칸토(bel canto – 뜻 : 아름다운 목소리) 오페라 시대로 이어집니다. 가수들의 기교가 중요한 작품들이었죠. 이때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이 로시니(1792~1868), 도니체티(1797~1848), 벨리니(1801~1835) 입니다. 그리고 이 선배들의 뒤를 이어 등장한 작곡가가 바로 베르디입니다.
베르디는 대기만성형 작곡가입니다. 여관집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니 그렇게 풍족한 집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죠. 게다가 당시 이탈리아는 프랑스 나폴레옹의 지배와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침공을 받는 등 대내외적으로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아내와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잃는 질곡 있는 삶을 겪어야 했던 베르디. 하지만 베르디는 포기하지 않고 창작을 했고 점점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작품성을 더해 가며 오페라 역사에 이름을 남깁니다.
▲ 주세페 베르디 ⓒ 위키미디어
1842년에 발표한 ‘나부코’란 작품이 성공하게 되면서 베르디는 유명해지게 되는데요.
당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 지배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활발했고, 그의 오페라는 애국심을 자극했던 것이죠. 그 뒤로 몇 편의 작품들이 연속으로 역사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들로 큰 흥행을 거두고 베르디는 자리를 잡습니다.
▲ Giuseppe_Verdi,_Rigoletto,_Vocal_score_illustration_by_Roberto_Focosi ⓒ 위키미디어
그리고 이어서 중기 걸작이라고 말하는 ‘리골레토’(1850), ‘일트로바토레’(1853), ‘라 트라비아타’(1853) 등을 발표합니다. 이 시기를 중기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 세계가 역사적인 상황을 드러내는 작품관에서 개인의 감정을 다루는 이야기로 변화했기 때문이죠.
재밌는 지점은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또 다른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가 그와 같은 해에 태어난 라이벌 관계였다는 것이죠. 둘은 심지어 만난 적도 없다지만 베르디는 은근히 바그너에 대해 경쟁 심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그의 말년에는 놀랍게도 바그너의 관현악법을 수용하여 후기의 걸작들을 만들어 냅니다. ‘아이다’(1871), ‘사자를 위한 미사곡’(1874), ‘오델로’ (1887) 등이 손꼽힙니다.
87세의 나이로 장수를 누린 베르디는 국민 작곡가로서 수많은 사람의 추모 속에 장례식이 치러졌다고 합니다. 베르디가 남긴 유명한 명언이 있죠.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 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썼지만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분명 한 번 더 도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자신의 창작열을 불태운 베르디의 삶은 그가 만든 음악만큼이나 빛나 보입니다.
그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었다는 ‘라 트라비아타’를 소개합니다.
□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어르신들에겐 ‘춘희’라는 이름으로도 기억되고 있는 라 트라비아타. 이탈리아어로 길을 잘못 든 여자란 뜻인데요.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직업이 ‘코르티잔’으로 상류사회 남성들을 상대하는 여성들을 의미합니다.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연된 오페라이면서, 현재까지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으로 친숙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사생아였던 뒤마 2세의 원작 ‘춘희’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오페라는, 뒤마 2세가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자신의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되었고, 이를 희곡으로 만들어 공연하게 됩니다. 베르디는 이 연극을 보고 오페라를 만들게 될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해요. 당시 베르디 또한 자신의 작품 ‘나부코’에 출연했던 소프라노와 동거하는 상태여서 작품의 캐릭터에 강하게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라 트라비아타의 초연은 실패했다고 합니다. 시한부 삶을 연기하는 여배우의 나이와 외모가 그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청순가련한 시한부 여인의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진 이미지였다고 해요.
영화 ‘귀여운 여인’의 한 장면, 기억하시나요. 줄리아 로버츠와 리차드 기어가 함께 보러 가는 오페라가 바로 라 트라비아타 입니다. 영화의 인물들과 오페라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흡사하죠. 오페라의 내용을 안다면 줄리아 로버츠의 눈물이 가진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줄거리
알프레도는 파티에서 코르티잔 비올레타를 만나 한눈에 반합니다. 그리고 상사병을 앓던 알프레도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죠. 비올레타 또한 알프레도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녀는 폐결핵으로 인한 시한부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 두 사람은 파리의 교외에 살림을 차리고 도피하는데,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찾아와 알프레도의 여동생이 결혼을 앞둔 상황에 창녀와 동거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 안 된다며 그녀에게 이별을 요구합니다. 알프레도를 위해 비올레타는 그를 떠납니다.
하지만 알프레도는 이 사실을 모르고 비올레타가 배신했다고 오해하고, 그녀를 경멸합니다. 점점 죽음이 다가오는 비올레타. 과연 그녀가 죽기 전에 알프레도는 오해를 벗고 둘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대표곡
Brindisi (축배의 노래)
- 라 트라비아타는 몰라도 이 노래는 어디선가 들어보셨을 겁니다. 파바로티 하면 떠오르는 노래기도 하죠. 1막 초반에 알프레도와 비올레타가 파티에서 처음 만났을 때 부르는 노래. 즐기자! 란 말로 대표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파티에 정말 어울리는 노래죠.
Ah, fors'e lui (아! 그이인가)
- 알프레도에게 사랑을 느낀 비올레타의 설렘과 그 반면에 느끼는 괴로움을 표현하는 노래입니다. 소프라노의 기교와 감정을 최대치로 감상할 수 있는데요. 노래를 들으며 닭살이 돋는 경험을 하실 수 있죠. 이렇듯 벨칸토 오페라의 계보와 연결되는 베르디의 곡 중에서 특히 라 트라비아타는 여주인공 소프라노 역량을 한껏 감상하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
Addio del passato (지난날이여 안녕)
- 작품의 후반부. 죽음이 임박한 비올레타는 알프레도가 진실을 알게 됐다는 것을 듣습니다. 그러나 거울을 본 그녀는 자신의 삶이 끝나가는 것을 느끼죠. 그때 부르는 가장 슬프고도 유명한 아리아입니다.
▲ Carl_d'Unker_(attr)_La_Traviata_Eklat_am_Spieltisch ⓒ 위키미디어
오페라의 수많은 작곡가와 작품들을 다 소개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여기서 소개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몇백년에 걸쳐 축적된 오페라 문화는 현재에 와서 새롭게 재해석 되어 공연되고 있죠. 과거의 전통적인 모습에서 탈피해 현대무용과 무대미술을 만나 전혀 다른 작품으로 느껴지게 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작품들에 익숙해져 가면 이제 연출자와 가수의 해석을 비교해 보는 재미로 오페라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조수미 씨의 말처럼 오페라가 처음엔 익숙하지 않겠지만, 한곡 한곡, 한작품 한작품 보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감동을 받게 되고 미지의 문이 열리면서, 이제까지 보던 것과는 다른 빛깔의 세상을 만나보세요!
출처: 문화가 있는 날 공식블로그 http://pccekorea.blog.me